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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님의 파우치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본 의문의 차장님 손가락 얼룩과 파우치. 그녀를 지켜본 결과, 드디어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상상도 못 한 것들이 있었죠. 그리고 몰래 비밀을 봐버렸다는 걸, 차장님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희연(나)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Fri Jul 12 00:00:00 KST 2019

2차 회식! 2차는 호프집에서 했어요. 다행이었죠. 훨씬 마음도 몸도 편했어요. 스시집에서보다 다들 말이 많아졌죠. 목소리 톤도 높아지고, 얼굴이 다들 벌게지고 깔깔 웃고. 부장이 술을 많이 마셔서 꾸벅꾸벅 조니까, 리끼리는 더 많은 얘길 할 수 있었죠. 별 얘기 다 했네요. 연예인 얘기도 하고, 영화 얘기도 하고, 뭐 연애 얘기도 가끔은 하고요.
그때 차장님이 화장실에 다녀온 거죠. 희연 씨, 잠시만요. 나 화장실 좀.제가 통로 쪽에 앉아 있어서, 차장님이 나갈 수 있도록 잠시 일어서서 비켜 주었어요. 차장님은 파우치 하나를 들고나갔는데, 그러고는 퍽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죠.
 

차장님은 “죄송해요 부장님. 좀 오래 걸렸어요.”라는 말만 하며 파우치를 손에 단단히 들고 제가 자리를 비켜 주길 기다렸어요. 슬금슬금 엉덩이로 걸으며 자리를 비키다가, 저는 차장님의 손끝을 보고 말았는데요.

손끝에 그런 게 있었어요.

검은 머리카락 몇 올이 달린 살가죽 같은 게요. 그 작은 조각이, 차장님의 손가락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죠. 손톱 밑은 김장한 것마냥 약간 벌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고요. 그러고 보니 파우치도 아까보다 불룩해져 있었어요.

 

그날, 불룩해진 파우치와 주황빛 손톱 끝을 본 그날부터 저는 차장님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힐끔힐끔 쳐다보기엔 너무 무섭고 차장님이 귀신같이 알아차리실 것 같아서, 차라리 대담해지기로 했죠. 제가 또 잔머리 하난 끝내주게 좋거든요. 차장님을 롤 모델로 삼아 졸졸 쫓아다니는 신입 여사원. 그게
제가 설정한 캐릭터죠. 괜찮지 않나요? 대놓고 바라보기 딱 좋은 설정이잖아요.
“차장님, 진짜 멋있으세요.” 휴식 시간이면 밖에 나가 커피를 사 와 가지곤 차장님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어요.

차장님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확실히 그런 게 보였어요. 화장실. 화장실에 가실 때마다 파우치를 들고 가셨고, 돌아오실 때마다 그게 불룩해졌어요. 손톱 끝이 물들거나 하는 일은 다신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마 호프집에서는 좀 취하셔서 정리를 못 하셨나. 근데 너무 희한하죠? 만약 생리를 하시는 중이었다면 파우치가 홀쭉해져야죠. 패드를 썼을 테니까. 화장을 고치러 가신 거였다면 그대로여야죠. 왜 불룩해져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영 미스터리였어요. 그렇게 한 달 반을, 보기만 했죠. 월급 도둑은 아니에요. 일 열심히 하면서 봤어요.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왔던 거예요.

 

사람들이 우르르 떠나고 저 혼자 남았는데, 세상에. 차장님 책상 서랍이 진짜 아주 조금, 요만큼, 한 이 센티나 되려나, 그 정도 열려 있었는데, 고 사이로 삐죽, 나와 있는 거예요. 아주아주 삐죽하게요.
파우치 지퍼 손잡이가요!

손이 어찌나 부들부들 떨리던지. 어찌나 초콜릿 생각이 간절하게 나던지! 파우치를 들어서, 아니 왜 이렇게 묵직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지퍼 손잡이에 가져다 대고, 지이이이익 소리 내며 열 때까지, 침도 못 삼켜서 입에 흥건히 고였어요. 파우치 안에 뭐가 있었냐면요.

 

미끄덩한 눈알 두 개랑, 잘린 손가락 세 개가 있었어요. 

 

 

희연 씨, 내 서랍 건드렸어요? 이런 의심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점심시간에 희연 씨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었잖아요.

회식 자리에서 우연히 본 의문의 차장님 손가락 얼룩과 파우치. 그녀를 지켜본 결과, 드디어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상상도 못 한 것들이 있었죠. 그리고 몰래 비밀을 봐버렸다는 걸, 차장님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희연(나)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