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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날에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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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소개팅에서 만나 여러 번 반해 결혼까지 한 진아. 함께 요리를 하기로 하고, 먼저 장을 보러 간 남편이 쓰러졌습니다. 그는 배려가 넘치는 남자였고, 그녀의 말을 늘 들어주었습니다. 둘은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손에는 바지락 봉투를 꽉 쥔 채 쓰러졌습니다. 그는 왜 쓰러진 것일까요? 그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2019.07.10

남편과는 소개로 만났다. 좀 맹한 사람이긴 한데, 착해. 그냥 밥 한번 먹는다 생각하고 만나. 그것은 소개를 시켜 준 친구의 말이었다. 착하면 돼, 난 무조건 착한 사람이 최고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별 기대는 안 하지만 잘되면 내가 밥 한번 살게, 하고 대답했었다.
 

아, 몇 개 찾아 놓긴 했는데……
실은 제가 경기도 사람이라 이쪽 지리를 잘 몰라서,
추운데 헤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그가 물었고 그 괜찮으시겠어요, 에 그녀는 또 반해 버렸다. 소개로 만나면 무조건 남자가 장소를 정해야 한다느니, 하는 그 고루한 규칙 아닌 규칙들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픽 죽어 버렸다. 어머 그럼, 전 여길 잘 아니까요, 그녀는 주머니 속에 있던 손을 꺼내 남자의 코트 소매를 잡았다. 그럼 제가 좋아하는 데로 가요. 고르세요. 중식도 있고요, 태국 음식점, 시칠리아 음식점, 그리고 바지락 칼국수! 남자는 머쓱 웃더니 소개팅인데 칼국수 드시면 제가 죄송하죠, 하고 대답했는데 그녀는 고개를 젓곤 물었다. 소주 좋아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녀는 그를 끌어당겼다. 너무 추우니깐, 칼국수에 소주 한잔 마셔요.

 

 

결혼한 후에도 삶은 맛있게 끓었다. 넘치지도 않고 졸아 버리지도 않게 적당히, 간이 잘 배어 있었다. 남편은 그녀보다 항상 조금 먼저 퇴근했다. 오늘은? 나가사키 짬뽕. 오늘은? 시원한 얼갈이 된장국. 오늘은? 칼칼한 동태탕이지. 오늘은 뭐로? 오늘은 오빠 먹고 싶은 걸로. 사무실 문을 나오면 늘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메뉴를 물었고 답을 들으면 곧장 마트로 향해 필요한 것들을 척척 사 오곤 했다. 그는 요리를 썩 잘했는데 그래도 언제나 그녀는, 미리 해 놓지 마, 같이해, 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료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그는 그녀가 퇴근하길 기다렸다.

 

 

자, 회의 들어갑시다. 부장의 말에 그녀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놓곤 다이어리와 볼펜을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는 지루하게 질질 끌며 이어졌고 일곱 시 반에 끝날 예정이었는데, 여덟 시 반까지 이어졌다. 부장이 회의실의 시계를 치워 놓아서, 그렇게 오래 했는지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어쩐지 엉덩이가 아프더라. 투덜대며 다시 자리에 앉아 퇴근 준비를 하려는데,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이었다.

모르는 유선번호로 열 통, 그리고 아랫집 여자로부터 온 열 통이었다.

열 통이라니. 무슨 일일까. 뱃속이 서늘했다.
짐을 대충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채 두 번 가기도 전에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진아야! 여자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응 언니, 전화했었네, 회의…… 라고 대답하려 하는데 여자가 듣지도 않고 대뜸, 외쳤다.

진아야, 네 남편 마트에서 쓰러졌어!
내가 저녁 찬거리 사러 마트 갔는데 어디가 시끌벅적한 거야,
그래서 가 봤더니 네 남편이 쓰러져 있었어. 마트 한복판에.
사람들이 일일구에 신고하고, 그래서 병원으로 싣고 갔어.

소개팅에서 만나 여러 번 반해 결혼까지 한 진아. 함께 요리를 하기로 하고, 먼저 장을 보러 간 남편이 쓰러졌습니다. 그는 배려가 넘치는 남자였고, 그녀의 말을 늘 들어주었습니다. 둘은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손에는 바지락 봉투를 꽉 쥔 채 쓰러졌습니다. 그는 왜 쓰러진 것일까요? 그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