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빨간 날에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카멜북스의 매일을 소개합니다.

Daily > Post

아이들의 단체 대화방

최근 들어 SNS나 메신저 등을 통한 성희롱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발생했을지도 모를 이야기.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나'에게, 하필이면 나에게 생긴 것입니다. 모두가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K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Tue Jul 09 00:00:00 KST 2019

어느 사립 특수목적고등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일했다. 스물여섯에 임용되어 그해부터 담임을 맡았는데, 당연히 완벽하진 않았고 수많은 실수를 하며 가끔은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형편없는 선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삼 년 차 되는 해에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좀 힘들 수도 있어요.” 선생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그 과, 원래 대대로 말썽 많이 피우는 과라.” 나는 믿지 않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학생을 보면 어떻게 하나. 처음부터 어느 누구를 코너로 몰아세워 놓은 후 경기를 시작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첫날을 맞이했다. 첫 얼굴들을 맞이했다. 스무 명의 여자아이와 열 명의 남자아이가 있는 반이었다.
 

사건이 터졌다

여자아이들과 친하던 그 한 남자아이. K라고 부르겠다. 그 남자아이, K가 남학생끼리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이루어진 성희롱을 여학생들에게 털어놓았다. 섹스 잘하게 생긴 년, 좆같이 생긴 년, 가슴 커서 뛰어다니면 꼴리는 년, 입이 커서 잘 빨 것 같은 년, 같은 것들이 쓰여 있었다고 했다.
증거는 없었다. “K가 음담패설하는 게 싫어서 방을 나왔대요. 그래서 다시 들어갈 수가 없대요. 너무 더러워서 캡처할 생각도 못했대요.” 여학생들이 울며 소리를 질렀다

 

 

“저흰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요.” 아홉 명이 목소리를 모아 도리질을 했다. “진짜 안 했어요. 진짜 맹세해요. 너무 억울해요.” 눈이 커다란 남자 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억울해, 억울해 미치겠어요. 그런 쓰레기 같은 짓 안 했어요.” 그 애의 부모에 따르면, 하교하는 내내 뒷좌석에서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시트를 치고 울었다고 했다.

K의 부모는 전화상으로 내게, 우리 애는 어쩌죠, 어쩌실 거죠, 하고 물었다.

“무서워서 같이 야자 못 하겠어요.” 여자아이들이 철제 사물함 안에 녹음기를 집어넣은 채 교실을 떴고 그걸 이미 눈치챈 남자아이들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발로 사물함을 쾅쾅 차기만 했다.

 

그다음 날 오후 한 시 나는 여교사 화장실에서 울다 하혈을 했다.

최근 들어 SNS나 메신저 등을 통한 성희롱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발생했을지도 모를 이야기.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나'에게, 하필이면 나에게 생긴 것입니다. 모두가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K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어떻게 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