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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행 열차 종착지, 신도림역
기차를 좋아하던 대학시절 남자친구 혁진의 흔적은 어른이 되어도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이 되어 신붓감 1순위가 된 여자. 한 때 혁진과 주고받은 신도림행 종착역이야기 속 사람이 본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신도림행에서 그녀를 깨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2019.07.08
본 소설은 현재와 과거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됩니다.
검정 글씨는 현재이며, 회색 박스의 회색 글씨는 과거입니다.
출근길,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탈 때 나는 자주 혁진을 생각한다. 2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는 것은 쉽다. 9-1번 플랫폼에서 타기만 하면 된다.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 눈 아래로 계단이 펼쳐지고, 그걸 단숨에 내려가기만 하면 금세 4호선 승강장이다.
혁진과 나는 좋아하는 책도 음악도 영화도 비슷했다. 어어, 나 이 소설 진짜 좋아하는데. 헐, 나도 나도. 3월의 강의실에서 우리는 똑같은 작가의 책을 들고는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사실 그 작가의 소설은, 당시 비주류를 표방하던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 봐야 할 필수 코스였지만, 수능을 방금 치르고 들어온 수학교육과의 강의실에서 그의 소설집을 읽는 사람을 만나기란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혁진이 훨씬 명석했다는 것, 사진 찍는 걸 즐겨 툭하면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지하철을 포함한 모든 기차를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세상에, 기차를 좋아한다고? 내가 물었을 때 혁진은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게 큰소리를 쳤다. |
야, 김진아, 너 모르냐? 덕 중의 덕은 철덕이라고!
혁진과 연애하면서 지하철을 타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어느 날 신도림엘 가기 위해 2호선을 탔는데 우연히도 신도림행이었고, 생전 처음 보는 승강장에 떨궈지게 되었다. 뭐야, 여기 완전 음산해. 이거 뭐야? 내 물음에 혁진은 4번 승강장, 내 소원이 이뤄질 곳, 하고 대답했다. 엥, 소원? 내가 묻자 혁진은 클클 웃으며 말했다. 종착지까지 왔으니까, 이 열차가 이제 회송 열차가 되어 차고지로 들어가거든. 그런데 말이야, 너무 피곤하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서 잠든 사람이 이 안에 있다면, 그래서 미처 내리지 못하고, 회송 열차라고 표지가 바뀌고 문이 닫힌 상태에도 그 안에 그대로 앉아 잠들어 있을 수 있겠지…… 되게 슬프면서도, 웃기기도 하고, 또 사람들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 하루는 어땠을까 상상하게 만들 것 같기도 하고…… |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싶어. 그게 내 평생의 소원이야. 완전 소원.
열 시 오십 분. 술자리가 시작된 지 여섯 시간 이십 분만에 삼차가 끝난다.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이쯤 합시다! 역은 어디예요? 저…… 지하철을 타야 해요. 저기…… 저기 쭉 걸어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있을 거야. 어디서, 꺾어야 해요? 아아, 그 어디더라, 아 아, 그냥 길 가던 사람 붙잡고 물어봐, 김 선생! 대리기사들이 속속 도착하고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 혼자, 덩그러니 남는다.
역을 간신히 찾아 열차에 오른다. 두 정거장쯤 지나자 자리가 나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희부옇게 멀어진다. 지금 앉으면 곯아떨어져 환승역을 지나칠 것 같아, 손잡이를 붙잡고 의식을 지탱하려 노력한다. 10-4에서 하차하는 데 성공한다. 그 긴 환승 통로를 걷는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람들로 빼곡한 통로를 걷고, 몸을 긁적이는 상인들을 지나는데, 똑바로 걷지를 못하고 자꾸만 모든 사람에게, 저 술 마셨어요, 아주아주 많이 마셨어요, 곱창과 옛날통닭과 오뎅탕을 곁들여 소주와 맥주와 소맥을 마시고 두번 토했어요, 라고 광고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지 정장을 입고 술에 취해 휘청이며 걷는 커트머리의 여자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마침내 2호선에 탄다. 외선 순환이다. 자리에 앉아 가방에 고개를 묻는데, 갑자기 신이 나서 외선을 칠판에 그리던 혁진이 떠오른다.
아가씨, 일어나요.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어깨를 누군가 툭툭 두드려 눈을 뜬다.
기차를 좋아하던 대학시절 남자친구 혁진의 흔적은 어른이 되어도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이 되어 신붓감 1순위가 된 여자. 한 때 혁진과 주고받은 신도림행 종착역이야기 속 사람이 본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신도림행에서 그녀를 깨운 사람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