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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보다 뛰어난 에드워드 소프를 아시나요?

권용진 작가님의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퀀트의 역사부터 실제 월스트리트에 입성한 퀀트의 이야기까지 만나보세요.

2019.05.17

 

 

1961년 뜨거운 어느 날 밤,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남자가 수십 명의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인 채 블랙잭 게임을 하고 있다. 굉장히 불리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카드를 받거나, 누가 봐도 유리한 상황에서 멈추거나 하는 등 블랙잭 초보자 같은 모습이었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패배하고 자리를 떠날 동안 그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궁지에 몰려서 파산할 것 같으면 어느새 다시 승을 거두며 되살아나곤 하였다. 결국 9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고작 8달러 정도를 잃고 일어났다. 그는 조용히 시스템 검증은 끝났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카지노를 빠져나갔다. 그는 바로 퀀트의 시작이자 후대 퀀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알고리즘 전쟁의 시발점, 1900년대 중반 최고의 투자가 에드워드 소프였다.
 


에드워드 소프는 퀀트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카지노 블랙잭 게임에서 수학적, 과학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컴퓨터로 딜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에서도 다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로 인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죠. 결국 그는 카지노를 떠나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사실 소프는 주식시장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소프가 블랙잭과 룰렛을 연구하던 초창기에 은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했다. 1960년대 전반에는 은의 수요가 치솟고 있었고 동전에도 섞어 사용했기 때문에 소프는 은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고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소프는 블랙잭으로 벌어들인 2만 5천 달러와 책 인세 1만 5천 달러를 저축하고 있었다. 은은 상승하기 시작했고 신이 난 소프는 대출까지 하면서 은에 투자하게 된다. 그러나 온스당 2달러 하던 은은 1.3달러까지 추락하였고 담보인의 회수 요청에 따라 가지고 있던 은을 강제로 팔아 연봉의 반인 6천 달러를 손해 보았다. 이후 온스당 2.5달러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1.5달러까지 떨어졌다. 소프는 뉴스에서 얻은 정보로는 투자 우위를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소프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정보의 질은 확률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블랙잭에서 했던 것처럼 각각 시나리오마다 어떤 식으로 주식이 움직이는지 컴퓨터에 입력하고 그 확률을 하나씩 산출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주식의 수학적 확률 접근에 대한 책과 논문을 탐독했습니다.


 

당시 주식 중개인이었던 리건은 ⟪시장을 이겨라⟫를 읽고 크게 감명받았다. 그는 소프를 찾아가 자신이 자금책을 맡을 테니 함께 파트너가 되자고 제안했다. 그 후 소프는 워런 버핏의 조언으로 리건과 함께 컨버터블헤지어소시에이츠라는 헤지펀드를 만들고 1998년까지 20년 넘게 25%가 넘는 수익률을 보여주게 된다. 그는 워런트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퀀트의 기본이 되는 여러 가지 알고리즘을 시도해 꾸준히 수익을 냈다. 무엇보다도 그가 추구했던 것은 ‘캘리 공식과 정보 이론에서 배운,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파산 위험이 있는 투자는 하지 않는다’였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워런 버핏보다 뛰어난 투자가입니다.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것에 투자하고, 위험성은 제로에 가까운 것에만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1974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첫 헤드라인은 '컴퓨터 공식으로 한 남자가 시장에 거둔 성공의 비밀'이었습니다. 그의 성공담이 알려지면서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제2의 소프가 되기 위한 퀀트가 컴퓨터 앞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권용진 작가님의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퀀트의 역사부터 실제 월스트리트에 입성한 퀀트의 이야기까지 만나보세요.